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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심장, 감정, 조급함.

심장에서 긴장감이 돌고, 멀리서 말 탄 병사들이 무리를 지어 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감정은 몸 안의 장기들로부터 시작된다. 흔히 감정은 이야기라고 한다. 물리적 실체가 아닌, 상상으로 만들어진 언어인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위협을 받으면 이에 반응하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지구의 45억 년 역사 동안 우주, 태양, 지구, 분자, 원자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만들어 낸 리듬과 조화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아로새겨진 DNA가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실체(덩어리) 있게 존재하게 했다.

 

심장, 간, 위, 대장, 소장, 신장 등은 지구 나이만큼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처음에 무엇이었을까. 개울가의 가재나 송사리처럼 아주 작은 개체들도 우리가 가진 것과 비슷한 장기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뇌가 만들어 낸 상상과 사고, 이성과 철학이 이들에게는 조금도 없는 걸까. 최근 문어가 꿈을 꾼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약 5억 년 전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인간과 문어인데도, 문어 역시 꿈을 꾸며 낮에 학습한 경험을 기억하고 정리하며 강화한다는 것이다. 꿈을 꾸는 동안 낮 동안의 사냥, 포식자 회피, 사회적 관계 등의 경험을 재현하는 듯한 유사한 뇌파가 나타난다고 한다.

 

감정은 배에서부터 올라온다. 나는 주로 심장에서 자주 감정을 느낀다. 지금은 오후 3시, 낯선 태국의 푸켓. 아름다운 오늘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햇빛, 중정에 놓인 예쁜 수영장과 열대 야자수들, 이들이 만들어 낸 무릉도원 같은 풍경이 습관처럼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평화로움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고동이다. 어릴 적 집에 장식처럼 놓여 있던 세계위인전과 한국위인전을 습관처럼 읽었다. 압도적이고 위압적이었던 그 책들을 하나씩 읽어갈 때마다, 나는 영웅의 아들이자 시대를 이끌어갈 위인이 될 '슈퍼맨'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상상 속에서 강렬한 힘과 지혜를 얻어 용기백배한 채 동네를 뛰어다니고, 나무를 타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놀이를 하곤 했다.

 

50년을 살고 난 지금, 나는 어릴 적에 가졌던 꿈을 돌아본다. 나는 조급함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기에, 실제로는 더 심한 성급함과 불합리한 초조함을 품고 있을 것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한 이성으로 살아가길 바랐던 40대까지의 내 인생은, 돌아보는 데 10분이 걸리지 않을 만큼 내용이 비어 있고 기록도 엉성하게 저장되어 있다. 나 스스로를 기록하지 않았기에 재생할 수 있는 양도 많지 않지만, 우주가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고 신비한 일이다.

인간이 가진 감정, 생각, 상상을 인간만의 전유물로 여겨왔지만,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 역시 그들만의 관점으로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며 상상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조급함이라는 감정 또한 단지 집착에서 시작된 것만이 아니라, 불안 또는 생존 위협이라는 관계 속에서 발생한 신체적 반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불안과 조급함이 늘 나를 짓눌러 왔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나를 자극하고 고무시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그 감정들이 나를 죽을 만큼 힘든 동요 속으로 몰아넣어 질식시키려 하기도 했다. 이러한 감정과 사회적 문화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줄 알았으나, 아주 작은 개미에게서도, 우리보다 미천하게 여기는 꿀벌들에게서도 그들만의 관점에 따른 감정과 상상, 도덕이 존재한다. 지구 위의 모든 존재가 동등하게 여겨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를 개별적인 자아라고 믿는 그 믿음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단지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우리는 결국 하나에서 비롯된 여럿일 뿐이다. 한 나무에서 자란 여러 과일이며, 바다에서 치는 하나의 파도일 뿐인 것이다. 우리는 지구에서 탄생했다. 지구는 태양에서 탄생했고, 태양은 은하로부터, 은하는 우주로부터 태어났다. 인간이 지구에서 산 지 20만 년이 흘렀다. 앞으로 천 년쯤 후에는 우주에 대한 지혜를 더 깊이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종족의 미래, 지구의 미래, 태양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아니, 아마도 이미 오랫동안 함께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진화해 나갈 먼 미래는 분명히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그 미래를 지금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을 보는 사람은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고, 불안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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